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앨런 아이버슨 (문단 편집) ===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 [[파일:external/a.espncdn.com/espn_g_iverson_rookie_200.jpg]] 그도 신인 시절에는 [[근본론|평범한 비주얼]]이었다.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팬들과 구단의 엄청난 지원과 성원을 받으면서 아이버슨은 맹활약을 펼친다. 50득점을 기록하기도 했고, 그의 화려한 플레이는 많은 팬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시즌 중에는 [[마이클 조던]]과의 매치업으로 더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으며, [[마이클 조던|조던]]을 크로스오버로 멋지게 속이고 점프슛을 성공시키기도 했다. 특히 5경기 연속 40득점을 기록했을 때는 그 [[마이클 조던|조던]]조차도 "나도 쟤 나이땐 저렇게 못 뛰었다."는 식으로 언급했을 정도. 그러나 필라델피아는 당시 하위권 팀이었다. 아이버슨이 아무리 날아다닌다고 한들, 선수진이 너무 얕아 팀 성적은 나아질 기미가 없었다. 또한 백코트 파트너였던 제리 스텍하우스와는 궁합이 잘 안맞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둘 다 손에 공이 들어와야 플레이를 하는 선수들인 점도 둘의 시너지 효과가 나오지 않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때쯤 아이버슨에 대한 평가도 루키 시즌 초중반에 비해 많이 냉혹해졌다. 개인 기량은 출중해도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선수라는 비난이 따라다녔고, 아이버슨 본인 역시도 인터뷰에서 지나치게 자신감이 넘치는 발언으로 존경심도 없는 무례한 선수라는 비난도 받았다. 1996-97 시즌이 끝난 후,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는 새로운 감독으로 명장 [[래리 브라운]]을 임명하기에 이른다. 일찍이 [[인디애나 페이서스]]에서 [[레지 밀러]]를 앞세워 [[인디애나 페이서스|페이서스]]를 강팀으로 만든 당시 코치 경력 20년의 [[래리 브라운]]은 [[전미 농구 협회|NBA]]를 대표하는 지장이자 용장이었다. 평소 한 성질하는 [[레지 밀러]]에도 지지 않고 자신의 강력한 디펜스 중심 팀 철학을 유지해왔던 [[래리 브라운]]은 아이버슨의 활용에 매우 고심했다. 엄청난 폭발력과 득점력은 있었으나 키가 작아 수비력에 문제가 있었으며 스타일상 제한적일 수 밖에 없는 전술활용 때문에 아이버슨 중심의 체제를 만들기가 매우 어려웠던 상황. [[래리 브라운]]은 아이버슨을 [[슈팅 가드]]로 돌리는 모험을 선택한다. 당시만 해도 겨우 6피트의 작은 키인 아이버슨을 2번으로 돌리는 시도를 보고 [[래리 브라운]]이 미쳤다고 생각한 팬과 전문가들이 많았으나, [[래리 브라운|브라운]] 감독은 아이버슨의 백코트 파트너로 2번 수비가 가능한 장신에 수비가 좋은 [[포인트 가드]]들을 배치하기에 이른다. [[에릭 스노우]]와 애런 맥키가 바로 그들.[* 공격에서는 이들이 1번 사이즈에선 아주 큰 키와 등빨을 무기로 [[포스트업]]을 통해 중앙에서 야금야금 공간을 잡아먹은 뒤 골대 뒤로 돌아들어가는 아이버슨이나 외곽에 패스를 쏴주는 스윙 오펜스의 축역할을 한다.] 덧붙여 포워드진과 빅맨진에도 공격력은 부족하지만 뛰어난 수비력을 보유한 선수들을 기용하면서 '1개의 창과 4개의 방패'라는 컨셉을 확실히 했고 자신의 플레이 스타일을 좀더 과감하게 펼칠 수 있게 된 아이버슨은 더욱더 날아다녔다. 1998-99 시즌엔 8년만에 팀을 플레이오프에 진출시켰다. 아이버슨 본인은 이 시즌에 평균득점 1위를 차지하면서, 역대 최단신 득점왕이라는 타이틀을 부여받게 된다. [[파일:external/sportige.com/Iverson-vs-Shaq-e1365690849685.jpg]] 그리고 2000-01 시즌에는 팀을 [[2001 NBA 파이널|파이널]]에까지 올리며 승승장구 했다. 이때 팀의 성적은 동부 전체 1위였고, 아이버슨은 [[NBA 올스타전|올스타전]] MVP, 정규시즌 MVP를 수상하는 등 최고의 시즌을 보내게 된다.[* 참고로 이 시즌 파이널 MVP를 제외한 모든 개인상은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가 차지했다. 정규시즌 MVP와 올스타전 MVP는 아이버슨, 수비상은 시즌 중반 트레이드로 합류한 [[디켐베 무톰보]], 감독상은 [[래리 브라운]], [[식스 맨]] 상은 애런 맥키. 파이널 MVP만 차지했다면 최고의 시즌이었겠지만...] [[2001 NBA 파이널|파이널]]에서는 당시 '''파이널까지 올라오는 동안 단 1패도 하지 않은''' [[샤킬 오닐]]과 [[코비 브라이언트]]의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를 상대로 1차전을 먼저 따내는 등 선전했지만, 그 후 내리 4연패하면서 우승에는 실패했다.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는 당시 동부 컨퍼런스 준결승과 컨퍼런스 결승을 모두 7차전까지 치르고, 아이버슨 역시 여러가지 크고 작은 부상을 달고 사는 등 여러가지 악재도 있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상당히 잘 싸웠다는 평. 게다가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는 파이널 전까지 모든 시리즈를 스윕으로 마무리하고 온, 말 그대로 미친 팀이었고 모두들 파이널에서도 레이커스의 스윕을 예상했기 때문에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의 우승보다 오히려 1승을 따낸 필라델피아가 더 주목받았을 정도였다.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nba&ctg=news&mod=read&office_id=430&article_id=0000000028|샤크에게 도전했던 아이버슨]] 그러나 그 후 두 시즌에서 1라운드 탈락, 컨퍼런스 준결승에서 탈락하고, 정규시즌 성적 역시 2000-01 시즌과는 확연히 떨어지는 모습을 보이고, 타 팀들의 지역방어 때문에 수세에 몰렸다. 결국 [[래리 브라운]]이 사임을 하게 되면서 둘의 인연도 끝나게 된다. 그리고 이후 아이버슨의 커리어는 조금씩 내리막을 가게 되었다. [[래리 브라운]] 감독이 떠난 이후로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는 아이버슨이 트레이드로 팀을 떠난 해까지 고작 플레이오프 1라운드 진출 한번만 했을 정도로 다시 내리막을 탔다. 그 사이 팀은 2001-02 시즌에 데릭 콜먼을 모셔서 '2옵션'을 짰지만 그가 유리몸이라서 썩 좋지 않은 모습을 보였고, 2003-04 시즌에는 글렌 로빈슨, 2004-05 시즌에는 [[크리스 웨버]]까지 트레이드로 모셔왔지만 성적은 역시나 신통치 않았고,[* 부상으로 옛날의 운동능력을 상실했지만 당시 [[크리스 웨버|웨버]]의 존재감이 너무 거대해서 아이버슨도 그가 팀에 온다는 말에 "농담하지 마셈"이라고 할 정도였다.] 결국 2006-07 시즌 개막 후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는 그는 [[덴버 너기츠]]로 트레이드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